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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결점 거장’ 제임스 에네스 “작곡가보다 내가 낫다는 오만, 가장 위험하다” [인터뷰]

헤럴드경제 / 2026.06.05
고승희

 

16일 부천아트스센터서 내한공연

독일 드레스덴 필하모닉과 협연

“연주자는 위대한 유산의 통역사”

바이올리니스트 제임스 에네스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바이올리니스트 제임스 에네스 [인아츠프로덕션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완벽함이나 무결점은 사실 큰 의미가 없어요.”

캐나다 출신의 거장 제임스 에네스는 ‘완벽한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 명으로 불린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그의 연주에 대해 “더 이상의 진보가 불가능한 완벽한 음악성을 가졌다”며 찬사를 보낸다.

에네스는 헤럴드경제와 서면 인터뷰에서 이러한 평가에 대해 “과분한 칭찬”이라고 말한다. 그는 “스스로 완벽하게 연주했다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자신의 기준이 충분히 높지 않았다는 뜻일 수도 있다”고 말한다.

‘무결점의 바이올리니스트’ 제임스 에네스가 한국을 찾는다. 그는 오는 16일 부천아트센터에서 드레스덴 필하모닉의 새 수장인 도널드 러니클스 경과 함께 낭만주의의 정수를 들려줄 막스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 에네스와 드레스덴 필하모닉의 내한 협연은 이번이 처음이다.

에네스에게 ‘무결점’, ‘완벽함’이라는 수사가 따라오게 된 것은 그의 정교한 음악적 스타일 때문이다. 에네스의 연주는 기술적 정확성을 넘어 자의적 과장이 없는 ‘정통파의 기교’로 꼽힌다. 음악가들 사이에서도 그는 ‘교과서’로 정평이 나 있다. 하지만 그에게 기교는 ‘음악’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완벽함이라는 것도, 음악적 표현과 분리된 기술적 정확성이라는 것도 의미가 없어요. 물론 기술적인 실수는 자신이 의도한 음악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해 요소죠. 하지만 음악적 의미 없이 기술적으로만 완벽하게 연주하는 것 역시 좋은 음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어쩌면 음악성이 결여된 기술적 완벽함이 예술적으로는 더 나쁠 수도 있죠.”

이 과정에서 에네스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위대한 작곡가들’이 남긴 음악을 곡해 없이 들려주는 것이다. 연주자는 “창조자가 아닌 통역사”라는 것이 에네스의 음악 철학이다. 그는 “작곡가들은 자신이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를 악보 안에 충분히 남아놓았다”며 “(연주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음악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일”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에네스는 악보를 치밀하게 들여다보고, 작곡가의 의도를 따라 해석하는 과정을 강조한다. 그는 “작곡가가 기보법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정확히 이해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며 “작곡가는 저마다 독특한 방식으로 기보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이해하지 않은 음악을 무대에 올리는 행위는 에네스에겐 ‘무책임’이자 ‘방관’이다. 예술가로서 지키는 엄격한 직업 윤리이기도 하다.

“만약 제가 어떤 작품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느낀다면, 저는 그 곡을 절대 공개적으로 연주하지 않습니다. 이해하지 못한 채 무대에 올리는 것은 청중과 작곡가 모두에게 무책임한 일이기 때문이에요.”

클래식 음악계에선 악보를 얼마나 충실히 따라야 하는지를 두고 오랜 논쟁이 이어져 왔다. 에네스는 작곡가의 의도를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에 선다. 그는 “음악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연주자 역할의 중요성을 결코 과소평가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악보에 적힌 내용을 의도적으로 무시한다면, 그것은 작곡가가 전달하려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자신이 더 나은 해석을 가지고 있다고 자만하는 태도”라고 봤다.

그러면서 “위대한 천재 작곡가들의 음악을 해석하면서 그런 대담하고 오만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접근”이라며 “나는 일반적으로 그런 접근을 철저히 피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통역사’로서 과거의 음악을 현대의 사람들에게 보다 가까이에서 전하며 대중과의 접점도 넓혀가고 있다. 팬데믹 기간 자택 거실에서 온라인 리사이틀 시리즈를 선보이며 스트리밍 시대의 새로운 클래식 공연 형식을 제시했다. 보수적인 클래식 명인으로서는 이례적인 행보다.

그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고, 음악을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일에서 가장 큰 에너지를 얻는다”며 “디지털 매체를 통해 과거 연주자와 관객 사이에 존재했던 권위적인 장벽들을 허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을 매우 뜻깊고 가치 있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이어 “음악 자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 음악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통역사로서 역할 역시 사랑한다”며 “만약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더 많은 대중에게 이러한 예술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전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매우 기쁘고 보람찬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음악적 동반자는 안토니오 스트라디바리의 황금기인 1715년에 제작된 명기 ‘마르시크(Marsick)’와 1740년에 제작된 훌륭한 과르네리 델 제수(Guarneri del Gesù)다. 에네스는 “어떤 악기든 그 악기가 어떻게 반응하고 작동하는지 깊이 이해하기까지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며 ”특히 위대한 악기일수록 세월이 흘러도 끊임없이 새로운 면을 발견하게 된다는 깊은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마르시크는 그에게 ‘첫사랑’처럼 다가온 악기다. 에네스는 ”처음 이 악기를 연주한 순간부터 깊이 사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악기로 구현해 낼 수 있는 스펙트럼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 느낀다”고 했다.

지금은 하나의 악기에만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음향적 탐구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여전히 훌륭한 바이올린들을 접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탐구하려고 한다”고 했다. 최근 1740년에 제작된 훌륭한 과르네리 델 제수(Guarneri del Gesù) 바이올린을 많이 연주하는 이유다. 에네스는 “이 악기는 음색과 객석 깊숙이 전달되는 소리의 울림 측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저에게 보여주고 있다”며 “이번 한국 공연에서 ‘마르시크’ 대신 이 과르네리 악기를 사용할 수도 있지만, 어떤 파트너와 무대에 오를지는 아직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했다.

그가 드레스덴 필하모닉과 연주할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바이올리니스트라면 평생에 걸쳐 수없이 연주하는 대표적인 레퍼토리다. 에네스는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은 정말 위대하고 아름다운 작품”이라며 “아무리 자주 연주해도 결코 질리지 않는다”고 했다. 에네스가 생각하는 이 곡의 강점은 ‘음악을 통한 매력적인 서사’, ‘끊김이 없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큰 흐름과 촘촘한 구조미’다. 에네스는 특히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과 드레스덴 필하모닉의 색채가 잘 어우러진다고 봤다.

“드레스덴 필하모닉은 유럽 악단 중에서도 독특할 정도로 풍부하고 아름다운 현악 음색을 지니고 있어요. 그 특유의 중후한 사운드가 브루흐 협주곡의 정서와도 매우 잘 어울리죠. 지휘자인 도널드 러니클스 경 역시 가까운 친구이자 커리어를 통틀어 자주 작업하는 협연자 중 한 명입니다. 무대 위에서 그와 함께 음악을 만드는 일은 언제나 큰 기쁨이자 영감을 줍니다.”

올해로 50세를 맞은 그는 인생과 커리어의 중요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그는 다섯 살에 바이올린을 시작해 열세 살에 몬트리올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데뷔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에네스의 음악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가 지향하는 것은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과 작곡가의 세계를 온전히 들려주는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개인적으로도 많이 변화했고 성숙해졌어요. 하지만 제 음악적 우선순위 자체가 크게 달라졌다고는 생각하진 않아요. 제게 성공적인 공연이란 언제나 표현하고자 했던 것, 음악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최대한 일관되게 전달했던 공연이었어요. 결국 중요한 것은 무대 위에서 음악이 가장 자연스럽고 진실하게 살아나는 순간을 만드는 일이라고 믿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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