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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세묜 비치코프 "침묵은 악마…러시아 학살에 입 다물 수 없어"[문화人터뷰]

뉴시스 / 2023.09.23
박주연 기자

"우크라이나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대규모 학살입니다."

 

러시아 출신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71)는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을 당시 바츨라프 광장에 섰다. 분개한 그는 세계 음악가들 중 가장 먼저, 강하게 전쟁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전쟁에 나가 돌아오지 못한 조부와 부상당한 아버지 등 아픈 가족사도 공개했다.

 

하지만 1년 반이 훌쩍 지금도 전쟁은 이어지고 있고 비치코프는 여전히 침통하다. 그는 최근 뉴시스와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때로는 침묵이 악마일 때가 있다"며 "'예술과 정치는 서로 관여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규칙 같은 말이 있지만 이것은 정치가 아니라 전쟁"이라고 강조했다.

 

"이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것이지 정치가 아닙니다. 당신이 만약 길을 가다가 약하고 힘이 없는 자가 얻어맞고 있는 것을 본다면 그대로 지나칠 건가요?"

 

그는 "나는 평생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살아왔다"며 "하지만 삶과 죽음, 인류의 실존에 대한 이야기라면 다르다"고 했다.

 

"나는 그저 인류애적 관점에서 인간답게 행동했을 뿐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 대규모 학살이고, 끝이 없이 이어지는 거짓말에 불과하죠."

 

세묜 비치코프는 1952년 러시아에서 태어났고 레닌그라드음악원에서 공부했다. 스무살 때는 라흐마니노프 지휘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등 두각을 드러냈다. 하지만 1975년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는 뉴욕의 매네스음대에서 수학했고 졸업과 동시에 대학 관현악단 음악감독으로 취임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다.

 

비치코프는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교육을 받은 것은 내가 가진 특권이었다"며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람들에게는 자유가 없었고, 나는 자유가 필요한 사람이었다"고 했다. "내가 경험한 것은 오직 음악으로 표현해 낼 수 있습니다. 인생이 바로 음악이기 때문입니다."

 

절묘한 균형감과 예리한 심리적 해석으로 유명한 그는 2018년부터 동유럽 대표 오케스트라 체코 필하모닉의 상임지휘자 겸 음악감독을 맡고 있다.

 

온화한 성격의 그는 악단에서 '대디'로 불린다. 2017년 오랜 지휘자였던 벨로홀라베크가 타계하고 슬픔에 빠져 있던 체코 필하모닉은 세묜 비치코프가 이끈 공연에 매우 감동했고, 이후 단원들이 무대 뒤로 찾아와 "우리의 대디가 돼 달라"고 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는 단원들이 자신을 따르고 좋아하는 것에 대해 "모두 존중받아야 할 이유가 있고, 사람을 존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내가 100명을 지휘한다고 해서 내가 그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솔로이든, 오케스트라의 가장 뒤에 있는 한명 한명이 다 중요합니다."

세묜 비치코프는 오는 10월2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 공연을 갖는다.

 

체코필은 내한 무대에서 악단의 필살기인 드보르자크의 작품만으로 무대를 가득 채운다. 드보르자크의 '사육제 서곡', '교향곡 7번' 등 체코 필하모닉의 지문과도 같은 프로그램을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자주 무대에서 만나기 어려운 '피아노 협주곡 g단조'가 오리지널 버전으로 선보인다.

 

체코필의 내한은 이번이 6번째지만 비치코프가 내한하는 것은 처음이다. 비치코프는 "한국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지난 4월 피아니스트 조성진과 너무나 감명 깊은 연주를 했다. 정말 대단한 음악적 파트너였다"고 평가했다.

 

비치코프는 "지휘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의사소통"이라고 믿는다.

 

"그들 각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타당성을 설득해 그들 모두가 나를 따르기를 원하게 만들어야 하죠. 그러면서 동시에 그들 스스로가 각자 원하는 방식으로 연주하거나 노래하고 있다고 느끼도록 설득해야 합니다. 강요된 이해나 음악이 아닌, 그들 스스로가 선택한 음악이라고 느낄 연주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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