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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안 가면 듣기 어렵다는 ‘나의 조국’ 전곡, 서울서 듣는다

한겨레 / 2025.10.10
임석규

세묜 비치코프 지휘 체코필, 28일 서울 예술의전당서 공연


이달부터 연말까지 세계 정상급 10개 오케스트라가 릴레이 내한공연을 펼친다. 10월엔 런던필, 엘에이(LA)필, 체코필이, 11월엔 베를린필, 빈필, 로열콘세르트헤바우 등 이른바 ‘빅3 오케스트라’가 연달아 한국을 찾는다. 구스타보 두다멜, 세묜 비치코프, 키릴 페트렌코, 크리스티안 틸레만, 클라우스 메켈레 등 지휘자들도 ‘역대 최강급’이다.

이 중에서도 명지휘자 세묜 비치코프(73)가 이끄는 체코 필하모닉 공연이 단연 눈길을 끈다. 명문 악단들의 동시 내한으로 ‘오케스트라 빅매치’가 이뤄졌던 2023년 ‘최고의 공연’으로 꼽혔던 조합이다. 지난번 드보르자크에 이어 이번에도 체코 작곡가 스메타나의 곡을 들고 온다. 체코를 방문하지 않는다면 실황으로 접할 기회가 드문 스메타나 교향시 ‘나의 조국’ 6곡 전곡이다. 이 곡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악단의 연주를 서울에서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 전문가가 ‘올해의 공연’으로 지목한다.

“일종의 ‘운명의 장난’ 아닐까요.” 공교롭게도 체코필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나의 조국’을 연주하는 10월28일은 체코 독립기념일이다. 서면으로 만난 비치코프는 “연주 일정과 프로그램을 구성할 때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닌데 우연히 맞아떨어졌다”며 “매우 상징적인 일”이라고 했다. 비치코프는 “체코필 단원들은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 음악을 접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라며 “체코 음악의 기념비와도 같은 이 음악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고 했다.

1~6곡으로 구성된 교향시 ‘나의 조국’은 연주 시간이 80분에 이르는 대곡. 이 중에서 가장 유명한 제2곡 ‘블타바’(몰다우)만 따로 떼어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체코의 수도 프라하에서 해마다 열리는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축제’는 ‘나의 조국’ 6곡 전곡 연주로 막을 올리는 게 오랜 전통이다. “스메타나는 외세의 지배 속에서 독립을 갈망하던 시절에 민족의 정체성과 사고방식을 지키려 노력했어요. 다른 작곡가의 영향을 받으면서도 체코의 음악적 전통과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했지요.” 비치코프는 “스메타나가 첫 두 곡을 완성한 직후 청력을 잃기 시작했지만, 작곡을 멈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베토벤을 떠올리게 된다”며 “‘나의 조국’은 시대를 초월해 울림을 주는, 보편적이면서도 동시대적인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비치코프가 지휘봉을 잡은 체코필은 2년 전 내한 당시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황장원 평론가는 “악단의 전통과 매력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해석을 부각하는 거장의 솜씨가 인상적이었다”고 평했다. 1896년 창설된 체코필은 작곡가 드보르자크가 창단 연주회를 지휘했고, 체코 태생인 말러가 자신의 7번 교향곡을 직접 지휘한 악단이다. 스메타나와 드보르자크, 야나체크 등 체코 작곡가들의 음악뿐만 아니라 러시아 등 동유럽 음악과 말러 작품에 강점을 발휘해왔다. 라파엘 쿠벨리크, 바츨라프 노이만,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엘리아후 인발 등 쟁쟁한 지휘자를 거쳐 2018년부터 비치코프가 이끌고 있다. 비치코프와 체코필은 29일엔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한재민 협연으로 드보르자크 첼로 협주곡과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

러시아 태생인 비치코프는 세계적 명성과 역량, 경력에 비춰 국내에선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2023년에야 처음 한국을 찾았고, 이번이 두번째 내한공연이다. 30대 때부터 베를린필을 이끌던 카라얀의 후계자로 거론될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다. 카라얀은 비치코프를 적극적으로 후원하며 베를린필 무대에 세웠고,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을 녹음할 기회도 줬다. 비치코프는 “개인이 고유한 목소리를 지니듯 오케스트라도 고유한 음향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치·사회 현안에도 분명한 목소리를 내는 지휘자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하자 다음날 곧바로 “악 앞에서 침묵하는 것은 그 공범이 되는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거짓말쟁이’ ‘학살자’라고 비판했다. 유대인인 그의 할아버지는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했고, 우크라이나 오데사에 살던 외가 가족들은 나치에 몰살당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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