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 2025.10.10
이민경
1악장 비셰흐라트·2악장 블타바(몰다우)·3악장 샤르카·4악장 보헤미아의 숲과 초원에서·5악장 타보르 ·6악장 블라니크. 체코(당시 보헤미아) 작곡가 베드르지흐 스메타나가 작곡한 민족주의 교향시 ‘나의 조국’은 총 6악장 80여 분에 이르는 대서사시다.
이 작품이 작곡되었을 당시 체코는 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스메타나 역시 오스트리아의 언어인 독일어를 먼저 배우고 이후 체코어를 배웠을 정도다. 그래서 이 곡 ‘나의 조국’에 더욱 애틋한 애국심을 담았다. 가장 잘 알려진 2악장 블타바는 한(恨)이 어린 선율이 특징적으로, 비슷한 정서를 공유하는 한국인들도 많이 좋아하는 곡이다.
체코의 독립기념일인 10월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체코필)를 이끌고 내한하는 지휘자 세묜 비치코프(사진)는 “다른 작품과 함께 연주할 필요가 없다”며 ‘나의 조국’ 전곡으로만 구성한 이날의 프로그램 구성을 자신 있게 소개했다. 서면 인터뷰를 통해 먼저 만난 비치코프는 “저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나의 조국’의 감정선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출신의 비치코프는 체코필의 음악감독이 되기 전까지는 ‘나의 조국’을 지휘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체코필을 이끄는 입장에서 체코 음악의 기념비적인 작품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는 취임 이후 곧바로 여러 무대에서 ‘나의 조국’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 곡을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꽤 오랜 시간 공을 들였습니다. 체코필 단원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 음악과 밀접하죠. 그래서 그들과 함께 이 곡을 연주했을 때 엄청난 감동과 동시에 흥미롭고 풍요로운 경험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제는 세묜 비치코프의 ‘나의 조국’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집니다.”
비치코프는 빈 필하모닉, 베를린 필하모닉, 로열콘세르트헤바우 등 유수의 악단과 더불어 체코필도 고유의 사운드와 정서를 지닌 오케스트라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지난 세기 동안 여러 악단의 사운드가 점점 비슷해지면서 차이를 구분하기가 어려울 정도가 됐다”면서 “그럼에도 여전히 빈 필하모닉을 들으면 ‘그래, 이게 빈필이지’라고 말할 수 있다”고 했다.
“체코필 역시 빈필처럼 남들과 다르고 독특한 오케스트라의 범주에 속한다는 사실이 저는 매우 기쁩니다. 누가 더 낫고 못하냐의 말이 아니에요. 그저 다를 뿐인데, 그 ‘다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긴 전통과 뚜렷한 정체성을 지닌 오케스트라와 작업할 때 지휘자는 두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그는 밝혔다. “오케스트라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제시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오케스트라의 정체성과 통합시켜야 합니다. 그래야만 눈부신 성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한편, 체코필과 비치코프는 10월 29일에는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로 자리를 옮겨 체코 작곡가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과 러시아 작곡가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을 선보일 예정이다. 비치코프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줄곧 차이콥스키의 음악을 사랑했다”며 “모든 첫사랑이 그러하듯, 이 사랑도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이민경 기자